강원도 원주의 자랑, 치악산은 이름 그대로 ‘치열한 바위산’이라는 뜻을 품고 있지만, 그 속은 오히려 조용하고 깊은 품을 간직한 산입니다. 이곳은 사계절 모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산으로, 가을 단풍 명소로 가장 많이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여름 숲길의 청량함, 봄의 신록, 겨울의 설경까지 어떤 계절에 가도 감동을 안겨줍니다. 그 중심에 위치한 구룡사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고찰로, 치악산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구룡사에서 이어지는 황장목 숲길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귀한 금강송 군락지로, 걷기만 해도 치유가 되는 길이라 불립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구룡사, 황장목 숲길, 그리고 치악산에서 꼭 들러야 할 포인트들을 중심으로 하루 코스를 구성해 봅니다.
1. 구룡사 – 치악산 자락의 천년 고찰
치악산 국립공원의 주 등산로 입구에 위치한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13년(673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아홉 마리의 용이 살던 연못’이라는 전설이 내려오는 이곳은, 절 자체보다 그를 둘러싼 자연과 전설, 시간의 흔적이 여행자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구룡사는 입구에서부터 고요함이 다릅니다. 걷는 내내 양옆으로 흐르는 계곡 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가 귓가를 감싸며, 약 1km에 걸친 경내 진입로가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혀 줍니다. 정식 경내에 들어서면 오래된 전나무와 소나무가 우뚝 서 있고, 그 너머로 대웅전과 범종루, 응진전, 산령각 등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특히 구룡사의 돌계단과 나무 건물들은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어 건축미를 감상하는 재미도 큽니다. 대웅전 앞에서 치악산 정상을 바라보는 각도는, 구룡사가 왜 이 자리에 자리 잡았는지를 단번에 이해하게 해 줍니다. 절 내부에는 아직도 수행하는 스님들이 거주하고 있어, 불경 소리와 은은한 향 냄새가 산사 고유의 분위기를 완성합니다.
사찰 외부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사계절 모두 그림엽서 같은 풍경을 자아냅니다. 겨울에는 눈 덮인 대웅전 지붕이 장관이며, 봄과 여름에는 녹음과 계곡물이 어우러져 피톤치드 가득한 힐링 공간이 되고, 가을 단풍철에는 전국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명소로 바뀝니다.
2. 황장목 숲길 – 치유의 기운이 흐르는 숲속 산책로
구룡사에서 이어지는 황장목 숲길은 치악산의 숨겨진 보물 같은 길입니다. 황장목은 조선시대 때 궁궐 건축에 쓰였던 최고급 금강송(소나무)의 한 종류로, 일반 소나무보다 더 곧고, 향이 짙으며, 밀도가 높아 벌레도 쉽게 침범하지 못하는 귀한 나무입니다. 이 숲길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보기 드물게 황장목 금강송이 자생적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어 천연기념물 급의 생태 가치를 지닙니다.
구룡사 후문에서 시작해 비로봉 방향으로 오르다가 숲길로 빠지는 코스로, 초입은 완만하고 걷기 좋은 흙길이 이어집니다. 초여름부터 가을까지는 나뭇잎이 울창해 자연의 터널 속을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으며, 발아래에는 낙엽이 두툼하게 깔려 있어 마치 천연 매트를 밟고 걷는 느낌을 줍니다. 길 중간중간에는 자연석을 활용한 쉼터와 데크, 목재 벤치가 마련되어 있어 쉬어가며 숲의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기 좋습니다.
무엇보다 이 숲길의 백미는 ‘소리’입니다. 사람의 발걸음 소리를 제외하고는 오직 바람, 새소리,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뿐입니다. 아무 말 없이 걷는 이 길은 마치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명상의 시간이 되며, 복잡한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고요해지는 느낌을 줍니다.
황장목 숲길은 전체 왕복 약 3km 내외로 비교적 짧지만, 체감상은 훨씬 더 긴 여운을 남깁니다. 걷는 길 자체도 부담 없고,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 함께 걷기 좋은 코스로 조성되어 있어 가족 여행지로도 이상적입니다.
3. 치악산에서 꼭 들러야 할 감성 포인트 3선
치악산은 워낙 넓고 깊은 산이기에 하루 안에 다 둘러보는 건 어렵지만, 구룡사와 황장목 숲길 외에도 짧은 시간 안에 들를 수 있는 감성 포인트들이 존재합니다. 아래 세 곳은 하루 일정에 충분히 포함 가능한 명소로, 감성적인 여행을 원하는 이들에게 적극 추천합니다.
① 구룡소 (九龍沼)
구룡사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계곡 아래 자리한 이 연못은 전설 속 ‘아홉 마리 용’이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이 깃든 장소입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소(沼)로, 주변의 나무들이 물 위에 투영되어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반영을 보여줍니다. 이른 아침에 가면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마주할 수 있어 사진가들에게도 인기 있는 장소입니다.
② 치악산 명상길 전망대
황장목 숲길 중간 지점에 위치한 목재 전망대로, 산 아래 원주 시내와 멀리 백운산, 태기산 능선까지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입니다. 데크 위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면 산맥의 입체감이 그대로 느껴지고, 해가 기울 무렵에는 노을빛과 겹겹이 쌓인 능선이 만들어내는 실루엣이 환상적입니다. 사람은 거의 없어 조용한 사색 장소로 추천됩니다.
③ 치악산 국립공원 안내소 부근 생태연못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국립공원 입구에는 소규모 생태연못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인공 연못이지만 자연스럽게 꾸며져 있으며, 여름이면 수련과 잠자리, 가을이면 억새와 단풍이 어우러진 조용한 산책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마지막 여운을 정리하며 여행을 마무리하기 좋습니다.
요약
원주 치악산은 단순한 산행지가 아닙니다. 천년 고찰 구룡사의 조용한 기운, 황장목 숲길에서의 깊은 숨, 그리고 소소하지만 강한 울림을 주는 감성 포인트들까지, 하루 안에도 충분히 마음의 여유와 치유를 선물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바쁘고 소란스러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만의 리듬으로 걷고, 머물고, 바라보고 싶은 날. 치악산은 묵묵히 그 자리에 서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다음 여행지로 치악산을 선택하는 것은, 곧 ‘자신에게 집중하겠다는 선택’이 될지도 모릅니다.